조산원을 열기전 나는 안양에서 아주 오랫동안 조산원을 운영해 오신 선배로부터 초음파 기계를 샀다.
선배님의 손자 손녀들이 마구 만져대는 통에 여기저기 문제는 많아 보였어도 내가 초음파기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약간의 기대감과 가슴 떨림이 있었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고물 초음파를 그 가격에 사다니 아주 내가 바보라고..
하지만 선배님의 손때가 묻은 물건에서 느끼는 뭔가가 날 잠시 그런 문제를 생각지 못하게 한 결과 이젠 나의 손때가 더 묻어버린 그런 친구가 되었다.

어떤 산모와 남편이 진찰을 받을때 간혹 말썽을 일으켜 낯이 뜨거워지는 경우를 몇번 당하고 나니 내심 속상한 생각도 들긴 했었지만 그 초음파를  보면서 아가의 생김새라던지 아가의 움직임에 서로 감동하는 장면들이 보여지면서 행복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점점 조산사인 내가 왜 초음파로 진찰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음파기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제부턴가 산과 진찰에 초음파 기계가 없으면 진찰이 가능하지 않은것 처럼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한번은 어느 미국인을 데리고 가정분만을 하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태반의 위치며 다른 이상상태가 있는지 종합병원을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참고로 그 여자분은 미국여자인데 이번에 4째 아가를 가정에서 출산할 분이였고 초음파는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하셨던 분이었다 다른아이 3명도 미국서 조산사의 도움으로 가정 출산을 하셨던 분이다 )
결국 막바지의 초음파까지 의사앞에서 거절을 하기에 그대로 나오긴 했지만 진찰하시는 분의 말씀이 "초음파를 안보신다면 제가 해 드릴 진찰이 없네요"...
초음파를 안보면 할 진찰이 없다?
우리는 그냥 아무런 진찰없이 그 병원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초음파가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는 80년도 후반기라고 기억된다.
산과 진찰에서 초음파의 등장이  있기 전엔 그럼 어떻게 진찰을 하였을까..
간단하다
지금의 진찰 순서에서 초음파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될 것이다.

초음파를 보는 것을 빼버린 일반 산과 진료에는
우선 체중과 혈압 간단한 소변검사와  약간의 문진이나 촉진이  있게 된다. (지금의 초음파를 대신한다고 굳이 갖다 붙이자면 촉진이 초음파를 대신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손으로 진찰하는 촉진으로는 아가의 선진부,,아가의 태내위치 ,,자궁저의 크기..배가나온 앞쪽으로 태반이 안착되었다면 태반의 착상 부위도 알수 있다
또 아가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라우베라는 나팔같이 생긴 기구로 아가의 콩닥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음으로서 아가의 안녕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물론 초음파의 발달로 산모의 생명을 건지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태반의 착상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과거 초음파기계가 없었을 당시엔 산모에게서 나타나는 증상만으로 태반조기박리나 전치태반을 진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산모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면에서는 칭찬 받아 마땅한 초음파기계이다


하지만 초음파 보는 시간을 산전 진찰의 대부분의 시간으로 할애되는 작금의  상황은 아가 품은 이들이 자식의 탄생을 함께할 의료진과의 대화시간을  그만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주 사소한 문제도 당사자에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고민일 수있다.
임신중엔 특히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더더욱 그런 증세가 심해질 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엔 시간과 여유있는 진찰이 필요한데 하루에 5~60명의 산모를 진찰하는데는한 산모에게 할애된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나를 만나러 오는 산모들의 대부분은 이런 점을 대표적인 불만으로 털어 놓곤 한다.

즉,
나의 아가를 받아줄 사람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게 없다는것이다
많은 대화로 신뢰를 쌓은 사람과의  진통과정은 출산에 얼마만큼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난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초음파 보는 시간을 좀더 줄이고 산모의 눈을 마주쳐가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좀 더 할애하는 산전 진찰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초음파를 자주 보지 않기로 했다.
사실 조산원으로의 산전 진찰은 그리 많은 경우가 아니어서 굳이 내가 초음파를 덜 보겠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고   그 대신 산모의 일상적인 고민과 임신중의 불편감과 궁금증을 이야기해 주는 시간을 더 할애하는 것이 더 훌륭한 조산사의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막 달에 한 두번 보는 내 초라한 초음파로도 아가의 얼굴이며 양수의 양이며 태반의 위치며..즉 내가 출산을 도울때 알아야 할  것들을 다 볼 수 있는

나에겐 너무나 훌륭한 초음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