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여년간의 임상을 접고 드디어 나만의 조산원을 열었습니다.
대부분의 조산원들이 문을 닫고 있고 젊은이들 사이에선 조산원이란 이름조차 낯설은 단어가 되었지만 평화롭게 출산하는 준비된 산모 앞에서 저의 18년 임상의 자부심은 맥없이 꺾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도 두아이를 분만대 위에서 다리를 묶이고 입에 손수건을 물고 고통을 참으며 낳았습니다.
아무런 의구심 없이 모두들 그렇게 하고 아기를 낳는거라고 생각 했을 뿐
어떠한 요구도 아기에대한 배려도 할 생각 조차 못했었지요.
당연히 분만 때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느 누구도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 주지 않았습니다.
임상에서 저 또한 많은 산모들에게 혹은 아기에게 제가 낳는 방식의 분만을 요구 했었으니까요.

조산원의 첫번째 분만을 하게되었습니다.
나이는 28살 초산이었으며 그 예비 엄마의 당당함에 저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신전부터 아기를 가질 준비를 남편과 같이 했고 임신내내 여러방면으로어떻게 하면 아기를 자연스럽게 세상에 태어나게 할수 있을까 하고 여러 병원등을 찾아 다니곤 했던 분이었습니다.
사정이 생겨 조산원에서 분만을 하긴했지만 산전진찰 내내 진통내내 저에게 보여준 여러가지 모습들은 제가 또한번 자극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산모는 임상에서 경험한 여러 산모들 보다 훨씬 주체적이었으며 진통중에 약30분 가량 심한 오한이 일어났으나 어떤 약물의 사용도 바라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자신감 있던 저도 그 상황에선 항생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아기는 태내에서 태변도 보지 않았으며 진통중에 아무런 이상상태가 나타나지 않았었던 산모였습니다.30여분의 오한이 끝난 후 산모는 진정되었고 무사히 3.85킬로그램의 건강한 남자아기를 분만할 수 있었습니다.
배림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다 30분가량 더 지켜본 후  아기는 만출되었으며  바로 산모의 왼쪽 젖가슴 위에서 평화롭게 엄마를 응시 했습니다.
태맥은 여전히 뛰고 있었으며 아기의 피부는 핑크 빛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가끔 엄마의 젖 무덤을 더듬거리고 찾았으나 전혀 울지 않고 고른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잠시 후 태반이 떨어지는 증상이 보이자 아기 아빠는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이 세상의 한 개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8개월에 접어 들었고 자주 조산원에 놀러오곤 합니다.
또랑한 눈망울과 단단한 몸집은 저를 하루 종일 즐겁게 만들어 주곤 합니다.예쁜 입으로 쪽쪽 소리를 내며 맛있게 엄마 젖을 먹는 모습또한 그렀습니다.

그후 병원보다는 그다지 많지 않은 분만을 했지만 그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옆에서 부드러은 눈길로 아기와 엄마 아빠를 지켜 봐 주는것입니다.아기는 스스로의 힘으로 밖으로 나갈 힘을 가지고 태어나며 어머니의 힘 또한 자연에서 나오는 위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준비된 부부와 아기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극히 마약한 것이었고 한사람 한 사람의 산모를 만날 때 마다 저는 그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요사이 저는 점점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고 가신 분들이 모두 저의 열성 팬들이되어버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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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땅의 예비 엄마 아빠들이 준비된 임신과 두려움 없는 출산을 하는 날까지 저는 이 조산원에서 항상 그들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