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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감동의출산이야기

글 수 119
제목
우리 푸름이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11-04 | VIEW : 2 1 1053
먼저 새벽1시에 그 먼길을 와주신 김옥진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먼저 출산하신 선배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11월3일 아침 6시17분 7시간의 진통끝에 우리 푸름이를 가슴에 안았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에요... 이렇게도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몰랐답니다.(참고로 저는 푸름이아빠랍니다^^) 11시 부터 진 진통을 호소하며 견디다가 진통간격이 잦아들면서 우리 원장님을 찿았지요.. 원장님 말씀으로는 진행이 잘 되고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하셔서 마음을 놓았지만.... 제 아내가 안골반은 넓은 편인데 바깥골반이 작아서 힘들거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새벽이라 아내가 진통을 호소하면서 졸더군요... 불쌍했습니다. 그렇게도 고통스러울까요...정말 눈물이 나더군요.... 제 아내에게 우리 푸름이도 지금 많이 아플거야..조금만 참자....라고 말을 했는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아내등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도 딱하고 안스럽기에.... 김옥진 원장님에 극진한 보살핌과 도움으로 끝내 건강한 공주님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세상모르고 저의 왕비님과 공주님은 꿈나라에 있답니다..정말 예뻐요. 폭력없는 탄생!!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결실이 너무나도 애틋하고 간절하도록 아름답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런거 모를거 같네요.... 모든분들 순산하시고 예쁘고 건강하게 키우세요~~ 감사합니다.  
울 이련이 집에서 태어났어요! 1 1773
우리 이련이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7개월도 훨씬 지났네요.^^ 그동안 얼마나 많이 컸는 지 몰라요. 더 지나면 어떻게 낳았는지 까맣게 잃어버릴 것 같아서 늦게나마 올립니다. 사실 전에 써놓은 걸 살짝 고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조산원 분만을 계획하고 28주 이후로는 병원 안다니구요. 집 부근에 있는 조산원 두 곳을 방문해 본 뒤, 아기탄생 조산원에서 낳기로 결정했어요. 예정일보다 일찍 낳고 싶었는데 1월 13일 예정일을 아무일 없이 보내버리고 15일 제사를 치르느라 나름대로 애썼는데도 그냥 넘어가고 시간이 흘러 19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새벽에 느낌이 좀 다르더라구요. 배뭉침은 며칠전부터 심했지만 그동안은 통증이 없었는데 허리가 아픕니다. 오늘 내일 낳겠구나 싶더라구요. 11시에 조산원에 진찰 받으러 갔습니다. 자궁은 손가락 하나 정도로 열리고 자궁경부는 반 정도로 얇아진 상태로 예정일날 때보다 진행이 조금 되었지만 '운동 열심히 하면 빨라야 낼 보겠다'는 얘길 들었어요. 안산 중앙동에 있는 조산원을 나서서 운동 삼아 홈플러스까지 걸어가서 한시간 넘게 돌아다녔습니다. 뭐 살 것도 없이 여기저기 구경다니는데 배뭉치는 게 장난이 아니고, 허리도 아픈데 시간 대중은 없더라구요. 조산원으로 도로 가서 물어볼까 하다가 집에 가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한다 싶어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온 시각이 2시.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 때 조산원엘 갔어야 하는 건데 제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 -기 보다는 제 진통이 보통의 경우와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원장님이 분명히 진진통은 빨라야 5~7분 간격으로 시작한다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전 간격이 없을 정도로 계속 아픈 걸로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진통이 있을 때가 없을 때보다 더 길었어요. 암튼, 집에 오자마자 큰일...  
비지스와 함께 온 랑랑이 - 2탄 2 file 1383
첫째 때엔 출산 36시간 전 쯤 - 그 때도 낮이었다 - 에 이슬이 비쳤었다. 전날에 상태가 어떤지 안부 전화를 하신 김옥진 조산사님께 연락을 했다. 경산부라 이슬이 비쳤으면 거의 바로 출산 - 아니 진통 - 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하신다. 첫째 때의 예를 들며 아직 가진통도 없으니 좀 더 기다려보시자고 말씀드렸다. 실은 주말부부인 남편과 나는 조금 여유있는(?) 분만을 위해 둘째 랑랑 - 태명임 - 에게 일요일에 나오라고 세뇌(태담)를 시켜왔었다. 첫째 때에도 주말부부였으므로 남편이 있을 때 나오라고 누누히 당부를 했었는데, 다행히 말이 잘 먹혀들어갔었다. ^^ 그러므로 수요일에 이슬이 나왔다고 해서 랑랑이가 집안의 전통(?)을 깨고 주중에 태어나리라고는 꿈에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출산휴가 전의 마지막 오후, 천천히 집으로 가져갈 물건들을 챙기고 있는데 뭉근하게 배와 허리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생리통이랑 조금 비슷한데 아프지는 않았다. 첫째 아람이 때의 가진통보다도 약한 느낌이었다. 시간 간격을 재 보았다. 약 30분 간격으로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통증은 없었으므로 느릿느릿 자리를 정돈하고 짐을 쌌다. 약간 피곤하기도 해서 칼퇴근을 할 생각이었는데, 옆자리의 동료가 함께 저녁식사할 것을 권했다. 어차피 집에 가서 밥 차려 먹느니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게 체력보충에도 나을 것 같아 저녁을 먹고 퇴근했다. 다음 날이 첫째의 농장견학날이라 도시락을 쌀 김밥과 간식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왔다. 피곤한 느낌이 점점 더 해지면서, 같이 쇼핑을 하던 첫째아이가 말을 안 듣자 조금 짜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운전하는 도중에도 배가 당기는 느낌이 왔다. 진통 간격이 20분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슬도 더 비치고 있었다. 저녁 ...  
비지스와 함께 온 랑랑이 - 1탄 1176
출산예정일은 5월 18일, 수요일이었다.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광주민주항쟁의 날, 1980년 5월 18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 이미 태아로서 충분한 생명체이긴 하지만 - 날로서는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첫딸 아람이는 5년 전 5월 말에 조산원에서 수중분만으로 맞이하였다. 초산치고는 분만진행이 빠른 편이어서, 진진통 - 물론 아팠다 - 4시간 여 만에 낳았었다. 조산사분께서도 "너무 잘 하네요. 둘째는 집에서 남편이랑 둘이 손 꼭 붙잡고 낳아도 되겠어요." 라는 칭찬까지 하셨었다. 그래서인지 막연히 다음 출산은 가정분만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기다렸던 둘째의 임신 후 막상 출산장소를 집으로 정하고 나니, 출장분만을 하는 분을 찾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대부분의 조산사 분들은 조산원에서의 분만만으로도 벅찬 처지여서 그런지, 출장분만보다는 조산원분만을 권하셨다. 남편이랑 둘이서 두 손 꼭 붙잡고 낳아도 될 것 같기는 했지만, 만약의 위급상황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인터넷의 검색 싸이트를 뒤지고 또 뒤진 끝에, 가정(출장)분만을 하는 조산사분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첫번째로 전화연락을 드린 분이 바로 김옥진 조산사였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또랑또랑하고 맑은 목소리는 꽤 젊어 보여서 왠지 (분만 임상) 경험이 적은 처녀 조산사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자아냈다. 하지만, 임산부와 태아의 상태를 조목조목 자세히 묻는 말씨에서 전문인다운 관록과 자상한 배려가 엿보였다. 며칠 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나니 맥이 탁 풀리면서 마음이 놓였다. 경산부는 출산날짜가 앞으로 당겨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여, 분만예정일 1주일 전부터 출산휴가를 쓰기로 하였다. 출산휴가 전날, 마지막으로 업무...  
우리집 안방에서 첨 만난 서연이^^ file 1238
아빠의 하루 교육이 태중 10달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는 선조들의 말씀에 귀귀울이며 작년 5월 어느 이른 새벽 별들이 빛을 발할때 삼신할머니께 정성들여 기도했었다. 기도가 먹혔던지 별빛따라 한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내려왔다. 엄마 뱃속에서 별 탈없이 10달을 보내고 지난 2월 초에 딸아이가 내 품으로 찾아들었다. 첫 아이라 출산에대한 약간의 긴장과 불안함이 우리 부부에게도 있었다. '공포심이 실제 산통 보다 더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라는 말에 힘입어 우린 최대한 편안한 장소에서 출산하기로했다. 수소문 끝에 김옥진 원장님과 인연을 맺게되었다. 원장님의 자상함과 더불어 생명에대한 따뜻한 마음에 감명받아 우린 편안한 마음으로 가정 분만하기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드디어 D-DAY 그날이 왔다. 몇시간의 산통과함께 퉁퉁부은 탯줄에 매달려 작은 생명이 세상에 나왔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원장님의 도움아래 탯줄을 잘랐다. 100분 동안 엄마 배위에 그냥 두었다. 일명 100분 나체. 태어나면서 난원공이라는 혈도가 닫히면서 폐호흡을 막 시작하는 시점이라 폐기능이 정상화 될동안 피부호흡을 할 수 있도록 그냥 둬야된다는 선조들의 지혜에 따랐다. 우주 만물이 기로 이루어져있고 우리 인간은 아주 정밀한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다한다. 그러나 한 생명이 던진 파장은 예상외로 덤덤하게 다가왔다. 애초에 내가 선택한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대하니 나와는 별개의 또다른 생명체일뿐 내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름을 이서연이라 지었다. 태명을 개똥이라 했었는데 이름보단 개똥이란 말이 더 친근했다. 서연이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때쯤 비로소 아이와 내가 큰 인연으로 만난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백일이 10일 정도 남았다...  
찬희낳은 이야기 2 - 조산원엘 가다! 1 1759
출발할 때 부터 분위기는 그닥 좋지 않았다. 거리가 멀다고 조산원을 여적 맘에 안들어하는 신랑. 내 배 아파 낳을건데 내맘대로 할껴! 라고 굳이 우기지 않아도 내 원하는 대로 해줄 맘 착한 양반이지만 영~가다가 애낳는 사태 벌어질까봐 두려운겐지 쌍수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올시다..였다. 12주까지 계속되던 하혈이 멎고 입덧도 조금 가라앉자 바로 조산원에 가겠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날짜도 화려한 5월1일 토요일. 운명적인 날이 되기에 조건은 충분했지만 대한민국 수도권의 토요일 도로사정은 그다지 협조해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초행길.. 안산이란 동네가 그저 내 첫사랑 오빠가 다녔던 한양대란 학교가 있는 곳이라는것 밖에 모르는 상태였다..-_-; 아무도 그렇게 안보지만 나름대로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품인지라 차는 꿈쩍도 안하지..시간은 째깍째깍 잘도 흐르지.. 아하..이거 점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더불어 옆자리 남자는 표정이 점점 뭐 마려운 사람처럼 바뀌고... 이미 약속했던 오전시간은 지난지 한참이다. 둘 사이에 냉랭한 한랭전선이 감도는 와중 저 멀리 청계-판교간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 표지판이 보였다. "그냥 다음에 가..저리로 빠져서 엄마네로 그냥 가자.." 이 무정한 양반. '왜?'냐고 한마디도 안묻고 바로 빠진다..- -;; 길도 약을 올리나 청계-판교 고속도로에는 차 한대도 없고.. 갑자기 기분이 확 꺼지면서 별별 서글픈 생각이 다 들었다. 누가 배아파 낳을건데..이 인간아 가기싫으면 가기싫다고 말로 하던지.. 두고보자..애낳을때 머리카락 죄다 뜯어놓을게다.. 혼자 조수석 구석에 머리박고 삐질삐질 울고 있으려니 좀 미안했는지 괜히 운전하다 말고 사람을 툭툭 건드린다. 한마디 대꾸도 안하고 친정에 도착해서 조...  
성빈이 출산기,,,,,,(1) 1 file 1628
우리 빈이 나온지도 70여일이 되어가네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잘모르고,... 그래서 무지 걱정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좀 살만하네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출산기올릴께요... 기억을 더듬어서..... 조산원이란데를 어떻게 알게됐을까요...생각해보니까 결혼하기 한참전이었다.문득 쉬는날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다보니 최민희 선생님이 강의를 하고 있었다. 제목은"신생아 100분 나체요법" 그걸본후 자연스런 분만법과 조산원분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곧장 책도 사서 보게되었다...책을 보면 볼수록, 내가 배우고 겪어왔고 또 그렇게 시행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중에 난 저렇게 해야지하는 마음도 들었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분만도 많이 보게되고 신생아도 보게되는데 나는 병원에서 환자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후 아기가 생겼을때 신랑에게 책을 보여주고 조산원 분만에 대해 내생각을 얘기하니 흔쾌히 따라주었다.솔직히 난 결정을 하고 나서도 나중에는 이만저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신랑은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3교대 근무로 태교다운 태교도 재대로 못하고, 초기의 심한 입덧때문에 무지 고생 했지만 어느덧 날은 다가왔지만, 내진후결과는 예정일을 지날것 같다는 샘님의 말씀... 실망스러웠지만, 예정일까지만 나와달라고 하루에도 몇번씩..말하기를 여러날... 조금은 몸이 힘들었던 저녁근무를 마치고 들어와 자리에 누웠고 신랑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밑으로 뭐가 흥건하니 새기시작했다.....아...시작이구나......  
찬희낳은 이야기 1 - 조산원 출산을 결심하기까지.. 1 file 1477
드디어 오후 2시..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하고는 그길로 달려간 병원. 불안하게도 의사는 아직 아무것도 안보인다며 일단 피를 뽑고는 오후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하나하나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대학 합격 발표 전화를 걸었을 때도 이렇게 떨었었나? 쇼파 구석에 뭐 싸는 자세로 앉아서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축하합니다~! 임신 확실하시네요! 아마 아직 너무 초기라 애기집이 잘 안보....” 그 뒷말은 간호사가 뭐라 했는지 솔직히 지금도 기억이 잘 안난다. 그저 전화에 대고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만 시끄럽게 외치다가 추하게 질질 울며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결혼한지 만 3년. 온갖 검사와 인공수정까지 해가며 노력한지 1년. 마음을 접고 이제 그만 하늘의 뜻에 맡기자..라고 마음 먹은지 한달. - -;; 임신이 안돼 고민했던 때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인 ‘마음을 편히 먹어야 애가 들어선다’ 라는 말이 사실로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어른들의 말씀은 무시해선 안된다.. 우리 친정은 딸만 다섯이다..- -;; 아들을 한번 낳아보겠다는 엄마의 무서운 집착이 낳은 결과라고나 할까.. 결국은 다섯째인 나를 낳으시고는 집착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막내였던 탓에 처녀적부터 먼저 시집간 언니들의 출산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려 8kg이나 빠진 입덧기간이 지나고 컨디션도 어느정도 되돌아오자 이제 애를 어디서 어떻게 낳고 어떻게 기를것인지 슬슬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어렵게 갖은 애기인데 으리으리한 종합병원에서 호강(?) 받으며 낳으라고 했지만 그동안 봐온 언니들의 출산을 보건데, 과연 병원에서 낳는 것이 ‘호강’ 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언니는 ...  
***돌을 맞이하여 쓰는 유찬이 탄생기*** file 1568
첫아이 유산후 , 최민희선생님의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쓰신 책도 보게 되고 운영하시는 '수수팥떡'사이트도 자주가면서 조산원은 저에게 낯설지 않은 문화였습니다. 우리는 기다리던 아기를 유산후 다시1년만에 갖게되었고 남편은 원장님을 뵌후 마음을 굳혔고 모두들 우려했지만 전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 36주에 다시 거꾸로 돌아간 유찬이는 병원에서 계속 수술을 은근히 유도하던차에 수술날짜까지 잡게 했습니다. 애기머리가 크다나요..나이는 들먹이진 않았지만 한몫했을겁니다..35세 . 전 막달에 조산원을 찾아갔습니다. 옥원장님도 큰편이라고 인정은 하셨지만....ㅡ.ㅡ 자연분만하기에는 충분하다고하시며 용기를 주셨지요. 처음부터 조산원을 찾아도 되었을 것을 그땐 몰랐네요.... 상담도 할겸 시설도 볼겸 조산원을 찾았는데 원장님이 맛사지로 아이를 돌리신다기에 남편과 의논하에 맛사지를 받게 되었고 그때가 38주쯤(아마도..)되었을 거예요. 초음파를 찍은후 엉덩이와 머리위치,구부린 방향을 보시고 원장님이 "영웅아(태명) 착하지~~아...이쁘다" 하시며 맛사지를 시작하셨고 저는 마음을 다잡을려고 하는 찰나!..원장님의 목소리.... "어머! 다 돌아갔어요! 왠일이니 영웅아! 이렇게 빨리는 처음이예요." 11초만에 돌아간 유찬이 땜시 우리 셋이 모두 하하.. 호호..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예정일을 일주일 정도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라.. 그런데 드디어 오후2시부터 조금씩 진통이 왔고 오후 7시쯤이던가....저희와 서너번의 전화통화를 하시던 원장님의 말씀.. 집도 가까우니 조산원 비었으니까 가서 놀고 있으라는.....^^ . 조산원에 도착해서는 음..여기가 화장실이고..음..냉장고엔 머가 들었나..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진통두 하다가...크크크.. 새벽에 먹을 야참(김밥,음...  
준호만나기...3탄 file 1380
2004년 4월 28일 새벽 2시 58분.....그렇게 울 준호 만났답니다. 다른 분들의 출산기를 읽어보면 그렇게 힘들게 아기를 낳은 후에 너무나 감동스러워 산모도 남편과 같이 울었다는데 저는 눈물이 안나오더군요.--; 제대로 된 진통은 2시간 반정도 밖에 안했는데 마치 푹 절인 배추처럼 기운이 다 빠져서 넋이 나간채로 그냥 누워 있었습니다. 남편이 "애썼다, 수고했다"며 토닥일 때도 그냥 넋나간 사람마냥 "어, 어"하고 마지못해 대답하고 있었죠. 탯줄은 당연히 남편이 잘랐고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젖을 물렸습니다. 누워서 젖을 물리는 동안 열상 입은 것을 원장님이 봉합해 주셨습니다. 원장님 말론 아기가 나오는 순간 "짝" 찢어졌다는데 못느꼈냐고 하시더군요. 그 자체가 얼얼해서 크게 아픈줄은 몰랐습니다. 그후에는 제가 정신이 없었던 관계로 잘 기억이 안나는데 몸무게를 재었던 것 같습니다. 2.8Kg이었죠. 태어나고 보니 원장님 말론 아기 머리가 좀 크다고 그러시데요. 그래서 마지막에 쉽게 나오지를 못하고 머리가 걸려 있었던 거였어요. 병원에서 "아기 머리가 좀 크네요."라고 의사가 말할땐 그냥 겁주느라, 혹은 수술하는게 더 낫다는 걸 간접적으로 말하는 거라 생각해서 무시했었는데 그말이 사실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병원에선 아기 머리랑 가슴둘레, 다리길이 등을 종합해서 몸무게를 가늠하는데 머리가 커서 3.4Kg이라고 한것이라 이해가 되더군요. 그후 젖을 물려서 100분 나체요법을 했습니다. 그것이 끝나고는 남편과 저와 아기 셋다 세상 모르고 잠을 잤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서는 한달전에 미리 사둔 디지털 카메라로 남편이 계속 사진을 찍기 시작하더군요. 원장님도 사진을 찍으시고.... 그날 오후엔 처음으로 아기 목욕도 했습니다. 원장님이 남편에게 목욕시키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