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지호 엄마로 산지 9개월,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느낌마저 설렌다. 조산원에서 지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니 그 이전의 기억부터 영화 필름처럼 돌아간다. 우리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기도하고 계획하여 지호를 갖게 되었다. 내 안에 새 생명이 자라나는 느낌은 정말 놀라웠다. 돌고래가 헤엄치는 것 같았던 태동, 점점 단단하고 동그랗게 커져가는 배, 체중이 실려 걸을 때 발이 무거웠던 만삭 시기 등을 거쳐 지호를 낳는 그 날이 왔다.

김옥진 조산원을 알게 된 것은 SBS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관심은 있었지만 용기를 내지는 못하였는데 하늘의 뜻이었는지 마침 간호대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임신 소식을 듣고 김옥진 조산원을 소개해주었다. 20주쯤에 상담 받고 교육을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순산 교육과 출산 교육을 받으면서 조산원 출산을 결심하였고, 농부와 산과의사, 황홀한 출산, 히프노버딩 등의 도서를 읽고는 자연 출산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옛날 어머니들이 아기를 낳아왔던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나도 출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예정일을 열흘 정도 앞둔 주말, 우리는 급히 만삭 촬영을 했고 맛있는 점심 데이트도 하고 차에 시트도 가는 등 부지런히 보냈다. 지호도 부지런히 나오고 싶었는지 새벽에 양수가 흘렀다. 24시간 이내에 진통이 와야 감염의 위험 없이 출산할 수 있기에 또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걸레질을 하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마트를 돌아다녔다. 그 날 밤 진통이 주기적으로 시작되었다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조산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출산 준비물과 간식 등을 챙겨 조산원으로 향했다. 이 때부터 지호를 만나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상태를 확인한 선생님이 좀 더 움직이라고 하셔서 신랑과 중앙동을 걷고 건물에 들어와서도 복도를 돌고 또 돌았다. 출산하는 방에 들어와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신랑과 함께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는 아프면서도 편한 진통을 겪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구도 함께 밤을 새고 다음날 밤에 또 찾아와 출산을 도와주었다. 새벽에 아파 낑낑 거릴 때 누군가 손 잡아주고 토닥여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위안이었고 그 순간은 진통도 잊을 수 있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오후가 되어도 지호는 나오지 않았다. 점점 진통이 세어져 먹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이전의 결심은 잊은 채 무통주사를 맞고 싶다고도 말했다. 김옥진 선생님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 물속에서 잠깐 편안함은 맛보았으나 진통은 더욱 세어졌다. 물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가 출산을 도와주는 기구들을 사용해 힘을 주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이렇게 해도 아프고 저렇게 해도 아프고 너무 아파서 이렇게 아플 바에는 차라리 아파도 힘을 세게 줘서 얼른 낳아버리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변기처럼 밑이 뚫린 의자에 앉아 앞의 손잡이를 잡고 주기적으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신랑도 함께 호흡하며 힘을 주었다. 지호가 내려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열매야 잘 회전하면서 내려와.” 얘기하면서 힘을 줬다. 나보다 아기가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것과 엄마가 호흡을 잘 해야 아기에게 산소가 충분히 간다는 요가 선생님의 말씀도 떠올리면서 호흡에도 신경을 썼다. 한참 힘을 주고 나니  선생님께서 보시고 이제 아기가 나오겠다며  함께 출산을 도와주셨다. 뒤에서 신랑이 잡아주고 선생님들께서 다리를 잡아 아기가 나올 수 있는 자세를 잡아주셨다. 친구도 함께 힘주는 것을 도와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용기가 났고 어서 지호를 만나고 싶었다. 선생님들은 본격적으로 10번 정도 힘을 주면 나올 거라며 격려해주셨고 정말 그렇게 지호가 태어났다. 정말 신기한 것은 지호가 태어나는 순간 아픔은 사라지고 출산의 기쁨만이 가득했다. 지호가 고개를 흔들며 꽉 젖꼭지를 무는 순간 모성애가 더욱 커졌다. 다가올 모유수유의 어려움은 몰랐기에 마냥 아기가 기특했다. 24시간의 진통으로 기력이 없었다 근처에 사는 친정 식구들이 찾아왔다. 친정 부모님은 작은 아기가 아빠랑 똑 닮은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 출산 굴욕 3종 세트라고 불리 우는 세 가지를 하지 않고도 나는 안전하게 출산했다. 또 출산 후, 산후조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하였는데 엄마와 아기가 떨어져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집에서 산후조리를 결심하였다. 산후 도우미 선생님과 남편의 도움을 받아 신생아를 집에서 돌보았다. 물론 힘들었지만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지호를 돌보았고, 어려웠던 만큼 보람도 컸고 또 처음부터 내가 돌보았기에 신생아 돌보기에 대한 두려움도 적었다. 신랑도 출산휴가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도우며 아기도 함께 돌보았기에 가족의 탄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신랑에게 조산원 출산의 좋은 점이 뭐였냐고 물어보았더니 일생에 몇 번 안 되는 특별한 경험인데 출산 전 과정을 함께 하였다는 것이 좋았고, 지호가 태어났을 때 아빠 배 위에 올려놓았는데 오줌을 쌌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출산 휴가 5일 동안 집에서 함께 아기를 돌보았던 것도 소중한 기억이었다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 출산을 준비하면서 함께 공부하고 출산 계획서를 작성하고, 아기에게 편지를 쓰는 등 부모가 되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유대감이 더 깊어졌다. 물론 우리가 부모로서 헤쳐 나가야 할 무수한 난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첫 단추를 조산원에서 자연 출산으로 끼웠다는 것이 뿌듯하고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성심으로 출산에 도움을 주신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